이도경, 너보단 내가 낫지 - 미디어에 드러난 ‘불편한’ 진실 미녀들의수다,

이도경, 너보다는 내가 낫지  - 미디어에 드러난 ‘불편한’ 진실


 -> 태어난 직후의 아기들에게는 불편함과 불편하지 않음, 두 가지 감정만이 존재한다고 한다. 우리의 감정은 어떻게 보면 '불편함'에서 시작된 것이다. 현재 미디어 사회에서 '불편함'이 얼마나 복잡한 양상을 띄고 진행되는지 '미녀들의 수다 - 루저녀편'을 통해 살펴보자.

불편함, 그 오묘한 감정  
 <미녀들의 수다>, 외국인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외국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여가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취지이다. 하지만, 정말 이 프로그램은 단순히 외국 문화에 대한 이해를 목적으로 하고 있을까? 아니다. 시청률 확보를 통한 이윤의 극대화가 최종 목적일 것이다. 몇몇 프로그램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사익 추구를 목적으로 한다. 즉, 미디어 시장 역시 시장논리에 따라 움직인다. 프로그램의 구성, 패널 설정, 편집 방향 등 모두 시청자에게 매력도를 높이기 위한 방향으로 설정된다. 미디어 제작자가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감정을 잘 요리해야 한다. 시청률을 상승시키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보고 싶어 하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 핵심이다. <미녀들의 수다>는 시청자들을 유인하기 위하여 ‘불편함’이라는 감정을 잘 이용했다고 생각한다.


시청률을 높이는 방법, 편안함!

-> 일반 사람들 머릿속의 서울대 여자와 서울대 출신 미녀 연예인 김태희의 사진이다. 누구에게서 편안함을 느끼는가? (미수다에 출연한 서울대 여자의 사진은 저작권 문제로 포스팅이 불가능한 점 양해해주세요^^;;)‘그러면 그렇지’
, 연세대녀와 서울대녀가 스크린에 나올 때 든 생각이었다. 서울대 여학생은 공교롭게도 나온 여대생 패널들 중에 가장 못생겼다. 하필이면 그가 편집되어 나온 부분은 명품 백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장면이었다. 연세대 여학생이 언급한 부분은 도서관에서 공부도 하면서, 남자도 만날 수 있다고 말하는 장면이었다. 편안했다. 대부분의 시청자가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사회적 통념에 부합했다.



시청률을 높이는 방법, 불편함?

  ‘저건 아닌데...’, 여대생 패널들이 결혼관에 대해서 언급할 때 든 생각이었다. 누가 봐도 더 바람직하고 건전한 시각을 가진 이들은 외국인 여성 패널들이었다. 한국 20대 여성을 대표하러 나온 여대생들이었다. 어쩜 저렇게 하나같이 생각이 없어 보일 수 있을까 싶었다. 보는 내내 불편했다. 내가 속한 그룹- 20대 여대생-이었기에 더욱 민망했다. 교수님은 다소 화가 났다고 하셨다. 분명히 여대생들의 발언은 사회적 인식에 부합한다. 결혼할 때는 조건을 좀 더 따질 필요가 있고, 적어도 자신보다 나은 학벌을 가진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하고……. 하지만 그들의 발언은 과도하게 극대화되어 있었으며, 부정적인 측면만 부각되어 있었다.

  <미녀들의 수다> 제작자는 시청자에게 편안함을 주기도 하고 불편함을 주기도 함으로써 시청률을 높였다. 여기서 어떤 대상을 불편함을 주는 요소로 만드는지 자세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열등감에서 오는 불편함이 아닌, 우월감에서 오는 불편함

  미디어는 대상의 부정적인 측면을 극대화시켜 불편함을 유발한다. 대상의 긍정적 측면을 극대화시켜 불편함을 유발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신보다 나은 존재, 예를 들어 미모의 서울대생이 나왔다면 단지 불편함을 느끼며 채널을 돌리고자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부정적 측면이 극대화된 사람들을 보면서도 채널을 돌리려고 할까? ‘저 사람보다는 내가 낫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개똥녀, 루저녀, 된장녀’(된장녀·개똥녀·루저녀·패륜녀…인터넷 ○○녀의 사회심리학 - **녀에 대한 신선한 해석이다. 나와는 다른 방향에서 접근했지만, 설득력 있는 글이다. 왜 **남은 없는가 궁금한 사람들은 Click!)가  얼마나 많은 관심을 받았는가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분명히 불편함을 느낀다. 하지만, 자신보다 못한 존재가 있다는 사실에 은근히 만족감을 느끼지 않을까? <미녀들의 수다>에 나오는 이도경의 ‘180cm 이하는 루저’라는 발언을 보면서도, 사람들은 ‘나는 저 정도로 외모를 따지지는 않아. 나 정도면 양호하네.’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마음 한 구석은 불편하지만, 계속해서 루저녀 사건을 입에 올리며 만족감을 느꼈을 것이다.



감정을 지배하는 자, 시청률을 얻는다.
  사회 전반이 시장 논리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람들의 감정을 조정할 수 있는 자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결국 승리한다는 것을 깨달아 가고 있는 시점이다. Facebook, Twitter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도 사람들의 심리를 잘 파악했기 때문이다. 내 친구의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지인이 추천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공감’을 중요시하는 현대인들의 심리를 완벽하게 파악한 것이다. TV 프로그램 시장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의 ‘감정’을 파악하는 자가 높은 시청률을 얻는 것이다.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하는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미녀들의 수다>로 유명해진 ‘루저녀’, 이도경의 경우처럼 TV 프로그램이 출연자의 일상생활을 망치는 것은 피해야할 것이다. 분명히, <미녀들의 수다> PD는 사전에 ‘루저녀’ 언급이 된 부분을 편집할 수 있었다. 하지만 편집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부분을 부각시켰다. 자막 삽입 등을 통해 최대한 시청자들의 감정을 자극한 것이다. PD는 시청률 상승, 프로그램 홍보라는 초기 목적을 달성했다. 그 날 분의 방송이 나간 후로 ‘루저’라는 단어가 일상 용어가 될 정도로 ‘루저녀 사건’은 엄청난 이슈가 되었다. 동시에 <미녀들의 수다>라는 프로그램도 엄청나게 부각되었다.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 양날의 검, 불편함

-> 이도경은 그 방송이 나간 이후로, 네티즌들의 '마녀사냥' 공격을 당해야했다. 장학금 신청, 인터넷 쇼핑 내역 등 사적인 정보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도경은 어떻게 되었을까. 홍대 정문에는 ‘180cm 이하는 루저’라는 글이 쓰였고, 그는 인턴으로 들어간 곳에서도 쫓겨났다. 결국, 그녀는 해외로 나갔다.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친 것이다. 분명히 이는 잘못되었다. 미디어는 이윤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유는 갖고 있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칠 자유는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미디어는 ‘불편함’이라는 감정을 이윤 추구의 도구로 쓰기 이전에 그 ‘불편함’이 사람들을 얼마나 분노하게 할 것인가를 고려해보아야 할 것이다. ‘불편함’을 유발하는 대상이 한 개인이라면 더욱 신중한 결정이 필요할 것이다. (아직도 정신 못차린 미디어! - Click!  ´러브스위치´ 김하나 된장녀 발언 논란..제2 루저녀 탄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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