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 - 강수돌 Transformation

본주의 회에서의 경쟁이란. . .



 본주의 경쟁 사회는 라톤 경주 

 제는 정하지 않은 선수도 등을 수 있다는 것


 

- 2002년 동계올림픽에서 우리의 금메달을 빼앗아 간 것이 부족했던지 2003~2004 쇼트트랙 월드컵에서 또 다시 한 번 반칙을 하는 오노다. 놀란 안현수는 그런 오노를 검지손가락으로 가르친다. 

 독일어에 ‘팔꿈치사회(Ellenbogengesellschaft)’라는 말이 있다. 한마디로, 옆 사람을 팔꿈치로 치며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치열한 경쟁사회라는 말이다. 자본주의 경쟁사회를 이렇게 실감나게 표현하는 말을 좀처럼 찾기 힘들다. 생각해보라. 마라톤경주에서 서로들 앞만 보고 달리는데, 자기 옆에 다른 사람이 따라붙으려고 하면 팔꿈치를 옆으로 확 휘두르며 남의 옆구리 같은 곳을 찌르는 장면을. 누가 보아도 반칙이 틀림없는데 팔꿈치로 치는 사람이 절묘하게 자기감정을 숨긴 채 마치 달리기 모션을 크게 하는 듯이 하면서 경쟁자인 옆 사람을 밀쳐낸다면 마치 규칙을 준수하며 달리는 듯 보이리라. 그리고 이런 사람이 일등자리를 차지하기는 매우 쉬울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일등’에게 박수를 보낸다. 칭찬을 하고 상을 주고 돈과 권력까지 안겨다주는 경우도 흔하다. 그런 식으로 '팔꿈치사회'에서 절묘한 반칙은 교묘히 '세탁'되고 만다. 물론 이런 식으로 반칙을 하는 것은 부분적일 것이다. 대부분은 규칙을 준수한다. 그러나 게임의 규칙이 지켜진다고 해서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큰 문제는 번 일등이 원한 일등이 니라는 것

                                                                                  














- 피겨 여왕 김연아조차 2등을 할 수 있다. 1등 자리를 지켜내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다.(저 때, 일본이 얼마나 환호했던지. . . click! 일본 네티즌 댓글로 보는 그랑프리 파이널)

  예컨대 ‘팔꿈치사회’에서 심각한 문제는, 한 번 일등 한다고 영원히 일등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무수히 많은 새로운 경쟁자들이 호시탐탐 그 자리를 노린다. 시간이 갈수록 경쟁은 치열하다. 그것을 버텨내려면 목숨을 걸어야 할 지경이다. 오죽하면 ‘국민 마라토너’ 황영조 선수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과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마라톤에서 ‘일등’자리를 두 번이나 차지한 뒤 1996년에 “더 이상 못 뛰겠다”며 스스로 ‘조기은퇴’를 선언하고 말았을까? 그것도 나이가 불과 26세인데. 어떤 기자가 황 선수에게 마라톤을 하면서 가장 고통스러울 때가 언제인지를 물었을 때, 그는 “에스코트하는 차바퀴 밑으로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하지만 , 서운 사실은. . . .
라톤 경주에서의 배는 수의 목숨을 보로 하지 않지만,
본주의 쟁사회에서의 배는  참가자의 목숨을 보로 한다는 것


  그러나 ‘팔꿈치사회’로 표현되는 자본주의 경쟁사회는 마라톤경주와 차원이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마라톤에서는 설사 번번히 일등을 못한다고 하더라도 생존 자체가 위협에 처하는 것은 아닌데 비해, 자본주의 상품경쟁에서는 남보다 계속 뒤처지게 될 때 생존 자체가 큰 위협을 받는다는 점이다. 더욱이 지금과 같은 신자유주의시대에 와서는 생존경재에 범지구적 범위에서 치열해지기에 심지어 ‘거지를 동정하지 마라’는 제목의 책이 나오기도 한다. ‘팔꿈치사회’에서살아남기 위해서는 거지에 대한 동정은커녕 자기 자신에게마저도 냉혹해야만 하는 ‘경제인(homoeconomicus)'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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